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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24 10분
- 2014.05.12 her
- 2014.05.03 봄날은 간다
- 2014.05.01 네버다이 버터플라이
- 2014.04.30 물랑루즈
- 2014.04.29 배우는 배우다
- 2013.01.08 개들의 전쟁
- 2013.01.01 Life of Pi
- 2012.10.14 인생이란
만질수도 볼 수도 없는 그녀를 사랑하는 과정. 낯선 익숙함, 섬세한 심리묘사에 찬사를 보낸다. - 9.6
모두들 스마트폰과 유사한 정체모를 디바이스를 바라보며 혼자 주저리 주저리 떠들고 다니는 장면은
현재 대중들의 스마트폰 중독현상과 표면적으로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미래라고 생각한다.
이 미친듯 익숙하면서도 말도 안되게 창의적인 설정의 양면성은 보는 내내 유쾌하면서 시어도르 만큼이나 관객들을 묘하게 만든다.
극 속 전개는 매우 친절하게 비유와 상징을 통해 두 남녀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실재하는 어느 여인과의 짧은 폰섹스와 프로그래밍 되어 전자신호르 존재하는 OS 사만사와의 섹스는 음성으로서 교감한다는 점에서 놀랍도록 흡사하였고
나체의 만삭 여인은 만지는 것은 물론 임신할 수는 더더욱 없는 사만사와 대조적이다.
오랜 처와의 결혼생활의 1년간의 동거후 어두운 인생을 살아가는 시어도어는 방황한다.
친구들과 교류하려 애쓰지 않고, 그저 홀로 게임을 즐길 뿐이다. 우연찮게 들어온 데이트 기회도 순간의 쾌락을 원할 뿐 정서적 교감은 그닥 원치않는 눈치다.
그러한 그에게 일종의 테스트처럼 인간과 매우 흡사한, 어쩌면 인간보다 월등한 존재 OS사만사가 등장한다.
약간은 허스키한 목소리와 유머러스한 화법, 인터넷을 통한 놀랍도록 넓은 정보력과 학습력은 대화할 소재가 무궁무진하다.
거기에 숨소리까지 더해진 그녀의 목소리는 시어도르에게 한 인격체로 착각되기에 충분하였고 더 나아가 감정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고객을 대신하여 형식적인 거짓과 달콤한 미사여구로 손편지를 써주는 시어도르와 실제 감정이란 것이 있을리 만무한 코드 언어의 그녀는 보다 높고 낮은 차원에서 일맥상통한다.
사람과 사람이 연애를 하든, 사람과 기계가 연애를 하든, 우리는 그 속을 알 수 없다.
만약 사만사가 어느 먼 나라의 실재하는 인간이라고 거짓을 말하고 계속 음성으로서 대화하였다면
그 속을 알턱이 있었을까?
우리는 단지 표현, 즉 겉을 보고 판단할 뿐이다. 그만큼 속이기도 쉽고, 착각에 빠지기도 쉽다.
영원할 것 같던 둘의 인연은 오래가지 못하고 끝난다.
글쓰는 도중에, 어쩌면 한번의 관람으로 이 영화의 리뷰를 쓰기엔 너무도 철학적인 내용이라 내가 감독의 의도를 반절이나 이해했을까 싶다.
봄은 온다, 그리고 간다. 사랑은 또 다시 올테고... 또 다시 갈 것이다. - 9.4
이 아름다울 것 같은 영화를 한 단어로 수식한다면 '씁쓸함' 일 것이다.
두근두근 설레는 봄날은, 언젠가 간다.
변심한 은수를 그 누구도 욕할 수 없다.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애담이다.
자연스럽게 눈이 녹고 봄이 찾아오듯 이 둘의 사랑또한 자연스레 찾아왔다.
그리고 웬만한 스릴러 영화보다 잔인하고 지독히 담백하게 이별은 찾아온다.
물론 전혀 극적이지도 않고, 오열하는 장면따윈 찾아볼 수 조차 없다.
덤덤히 이별을 받아들였던 상우는 하루종일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가슴 아파하지만, 다시 돌아온 은수를 받아주지 않는다.
이 둘이 즐겨먹던 라면처럼 사랑은 어느새 인스턴트가 되어버렸다.
쉽게 사랑에 빠지고, 쉽게 이별한다.
영원한 것이 있을까?
가슴이 아려오지만 우리네 삶의 사랑은 이렇다.
건조하고 무덤덤하고 지극히 평범하지만.. 사랑은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찾아오고 대수롭지 않게 끝나곤 한다.
상우는 그렇게 사랑하고 지질하게 매달렸었던 은수가 찾아옴에도 받아주지 않지만
그녀와 함께 하였던 아름다웠던 순간을 추억하며 엔딩크레딧은 올라간다.
참, 씁쓸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봄날은 그저 갈뿐.
학원물의 음지와 양지를 유쾌하게 버무린 신선한 독립영화 - 9.2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가 고작 배우 김고은이 출연한 영화여서 였다는게 우스울 정도로 김고은의 비중은 적다.
인지도 있는 배우들이 출연하지 않지만 각각의 배우들은 각각의 캐릭터들을 너무도 현실감 있게 연기하였고
마치 학창시절에 꼭 한명쯤 있을 법한 입체적인 캐릭터로 잘 소화해내었다.
오락성을 위해 고등학생들을 조폭처럼 잔인하게 설정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주인공이 강해져서 유쾌하게 복수를 한다는 비현실적인 설정 또한 없다.
마치 어디선가 실제로 일어났을 법하게 적당히 어둡고 적당히 유쾌하게, 그리고 소박하고 잔잔하게 전개해 나갔고
그런 작위적이지 않은면이 나로 하여금 몰입을 더하게 하였다.
물론 약간의 우연성이 가미되긴 하였지만 말이다.
영화의 기승전결에 굵은 사건은 없다. 중간중간 싸우고 즐기고 대화하며 물흘러 가듯 자연스레 캐릭터가 부각된다.
언 반년가량 주인공이 겪게 되는 짧은 성장영화이다.
같은 나이인 친구들을 통해 배우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배려해주고, 복수가 아닌 무시하는 법 또한 보여준다.
성인인 필자는 옛 생각도 나며 즐겁고 말끔하게 보았지만 이 영화를 꼭 청소년들이 보고 느끼는게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창 웃고 떠들고 밝아야 할 아이들이 말이다. (사실 그 동안의 국내 성장영화엔 너무 폭력과 욕설 위주여서 석연찮은 부분이 잇었다.)
내가 이 저예산 독립영화를 보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신선'하다는 것이었다.
몇백억 들인 블록버스터 영화도, 메이져 배급사와 스타 배우가 출연한 영화에도 찾기 힘든 신선함이 분명 존재하였다.
정확하게 집어내긴 어렵지만 이 영화는 관객에게 직접적인 카타르시스를 전달하지 않았고, 예상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반전 또한 연출하지 않았다.
그저 극 현실적인 연출에 몇몇 개성있는 캐릭터로 영상 자체를 유쾌하게 잡아내었을 뿐이다.
독립영화의 이런 신선하고 약간은 과감한부분 어쩌면 상업영화와는 차별화된 이 부분이 관객으로 하여금 신선함을 가중시켰던 것 같다.
전혀 마이너하지 않았고 오히려 도장 찍어내 듯 일정한 규칙에 맞춰 배급되는 메이져 영화들이 보고 배워야 할 점이라 생각한다.
간만에 오락성과 작품성 두 가지 부분을 만족한 아주 개운한 영화였다.
이 감독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 클래식과 사랑은 영원하다. 9.5
지극히 클래식한 스토리를 이토록 신나고 뜨겁게 보여줄 수 있을까?
관객들이 열광하는 것은 눈요기 뿐 아니라 그 안, 사랑의 순수함 때문이었으랴.
물랑루즈는 환락의 공간이다.
물랑루즈는 화려하고 유쾌하며 매혹적이다.
물질만능주의를 풍자하 듯 물랑루즈의 단원들은 다이아를 열망하며 노래를 부르고
사랑을 표방하며 부를 갈구한다.
이 공간 안에서는 재력과 권력만 있다면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사틴은 물랑루즈의 가장 아름답고 금전적 가치가 높은 창부이며 부와 성공을 갈구한다.
자, 다음으로 이 영화의 남주인공인 크리스티앙은
자유와 평화, 사랑을 쫓아 프랑스를 찾은 순정파 작가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 울부짖으며 순수한 사랑의 가치를 아는 남자이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용기를 내고 그 어떤 각오도 치룰 수 있는 남자이다.
지독히도 극적으로 상반된 세 인물들이 극 안에 대치되어있다.
사랑을 믿지 않는 창부와, 사랑만이 전부인 작가, 창부가 원하는 모든 미래를 줄 수 있는 백작.
이 뚜렷한 세 인물의 갈등으로 흘러가는 서사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 더욱 명확히 하려한다.
부와 사랑, 신뢰라는 가치의 굴레바퀴속에 가장 중요한 가치에 대해 고뇌하는 인물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주제는 거듭 강조되어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을 하고 그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 말이다.
뮤지컬 포맷을 차용하여 뮤지컬을 만들어나가는 이 영화는 음악과 무대효과, 비유와 상징을 통해 예술의 종합선물세트를 선사한다.
21세기 개봉작이기엔 너무도 상투적이고 진부한 스토리이지만 그 안은 익숙하되 신선한 음악들과, 역동적이고 화려한 볼거리,
마지막으로 배우들의 눈부신 열연으로 풍성하게 채워져있다.
즉, 풍성한 볼거리와 들썩이는 음악들로 관객을 매혹시킨 뒤, 약간은 우리가 싱겁게 생각하는 사랑의 본질로서 대해 크게 한방 날리는 셈이다.
두 남녀는 말한다. 죽을때까지 그대를 사랑하겠노라고, 하지만 사틴은 죽는 그 순간 우리의 이야기를 글로 써달라고 말한다.
그러면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수 있다고.
자유와 낭만, 사랑을 추구하는 19세기 보헤미안의 정신을 21세기에 잊고지내진 않았는지 자문하며 리뷰를 마친다.
- 순수함이 희석되는 모습에서 볼 수 있는 인간 본연의 모습 - 7.5
주인공 오영의 광기에 가까운 연기에 대한 애착.
그리고 그 재능을 발견하고 상업시장의 스테이지에 올려놓은 김장호.
그 시작을 계기로 포텐가득한 신인배우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심플한 플롯의 영화이지만
과거와 현재가 플래시 백되며 오영의 감정을 섬세하게 연출한다.
스토리의 선이 굵은 영화는 아니다. 분명 취향 타는 스타일의 영화이지만
'연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간의 미묘한 심리변화와 감정을 다루는 유리잔같은 이 영화는 관객을 스크린 안으로 서서히 끌어당긴다.
그로인해 오영이 분노할 때, 오영이 웃을 때, 오영이 겁에 질려있을 때 관객이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게된다.
지독히 순수한 열정으로 연기를 대하였던 오영의 주위 상황에 따른 태도변화는 1시간반 가량의 러닝타임에서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스무스하게 진행된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이 독하고 완고한 캐릭터가 말이다.
한 인물의 인기와 섹스, 가족과 우정등을 대하는 다양한 면이 한 편으론 놀라우면서도 한 편으론 너무 친근하여 캐릭터에 대한 매력은 가중된다.
러닝타임이 진행되는 동안 가파르게 타오르는 몰입도에 감정선은 고조되어가지만 꿈에서 깨어나 듯 지독히 현실적인 결말은
영화의 흐름에 찬물을 끼얹 듯 싱겁기만하다.
<개들의 전쟁> - 스포일러 포함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그다지 친절한 영화는 아니었다.
그들의 직업이 무엇인지도 어떻게 맺어진 인연인지의 회상장면도 나이는 몇 살즈음이나 되었는지도 가늠할 수 없다.
단지 하나의 에피소드를 정직하게 시작부터 러닝타임이 끝날 때 까지 자연스레 보여준다.
스토리에 기승전결이 있다면 이영화는 기승전에서 끝나는 듯한 약간은 당황스러운 전개의 영화다.
나는 이 영화에서 독립영화에서나 볼 듯한 참신함을 보았다.
캐릭터 자체는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자주 접할 수 있는 그런 인간상은 아니지만 묘하게 몰입되었다.
만약 우리 동네에 양아치가 존재했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정도 였으리라.
통상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캐릭터들의 용맹무쌍함이나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주인공의 특출한 능력 또한 이 영화에선 보이지 않았다.
포스터에선 굳이 찌질함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세상사 마음대로 되지않는 찌질함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일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약간은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가 오버랩 되기도 하였다.
<개들의 전쟁> 이라는 타이틀과 네이버 영화정보를 보았을 때 내가 기대했던 장르는 느와르 혹은 남자들의 땀냄새 나는 거친 액션 영화였지만
막상 까보니 그런 장르의 상업성 영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인지 너무도 반가웠다. 영화속엔 식스센스급 놀라운 반전이 존재하진 않았지만 매 장면장면이 내겐 예상치 못한 반전 투성이었다.
영화를 다 감상하고 느낀점은 이 영화는 극적인 요소를 이용하여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고자 하는 기존의 장르성 영화들과는
과감하게 차별화를 두어 캐릭터 설정부터 사건의 전개 상황까지 정말 있을법 한 리얼리티에 중점을 두어 연출되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이 이 영화가 그닥 참신한 소재와 스토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무기였다.
태권도부 출신의 막내가 하는 발차기보다 훨씬 우스꽝 스러웠던 동네 패거리의 두목 상근의 발차기에서도
통쾌한 복수를 하려는 장면에서도 마음이 약해져 서로 갈등하고 아웅다웅하고 투표를 하는 장면 조차도 대중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러한 연출을 의도적인 코믹연출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분명히 그 장면이 웃기긴 하나 코미디 영화라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
그 상황에서라면 아마 나도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휴머니티가 살짝은 돋보였기 때문이다.
가볍게 볼만한 영화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결말을 유쾌하게 결말지은 이 영화는 결국 감독이 관객들에게 무엇을 던지고자 하는지는 받아들이기가 난해했다.
후속이 나올 것 같은 여운과 기대감 또한 없었고 특별히 떠날데도 없는 그들이 저질러 놓은 일들에 대한 뒷 수습도 하지 못한채 엔딩크레딧이 올라가 버렸기 때문이다.
캐릭터성과 뻔하지 않는 긴장감 있는 상황연출에 몰입감을 높일 수는 있었지만, 이도저도 아닌 마치 결말을 정해놓고 촬영을 시작한게 아닌 촬영을 하다보니 결말을
흐지부지 급 수습한 것 같은 애매한 느낌이어서 극 초반부터 끌고간 재미와 기대감을 급 다운시킨 점은 이 영화의 큰 단점이라 생각한다.
감독의 첫 영화치곤 수작이라 생각하지만 앞으로 소재와 시나리오들을 조금 더 보완한다면 다음 영화는 더욱 기대가 되리라 생각하며 리뷰를 마친다.
7.0
2013-01-01 11:15 lotte cinema real D
Life of Pi - 스포일러 포함
원작을 읽지 않았다면 이 영화의 예고편과 포스터만 보고 뻔한 동물과 인간의 우정이야기라 착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극장안엔 아이들과 동반한 가족단위의 관객들이 많았다.
물론 <아바타>에 버금가는 영상미와 영화의 전반적인 쉬운 플롯으로 아이들이 관람하기에도 무리가 없었겠지만
이 영화의 별미는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 안에 내포된 비유와 상징 그리고 감독의 메시지였다.
난 이 영화의 키워드를 종교, 진실과 믿음, 자아의 성찰 이렇게 세가지로 분류하고 싶다.
예상외로 주인공의 성장기를 비중있게 다루었던 영화의 초반부는 주인공의 성격과 가치관, 신앙, 부모님으로의 영향을 보여준다.
2시간의 다소 긴 러닝타임에 파이의 성장기를 비중있게 다룬것은 배가 조난된 이후 행동의 인과 관계로써의 역할을 한다.
러닝타임의 2/3가량인 바다위 작은 구조선위의 호랑이와의 사투와 생존과의 사투가 파이의 입을 통해서 소설가에게 전달되어진다.
진실은 유일하게 파이 혼자만이 알고 있고 그 장대한 스토리의 증거물은 모두 뿔뿔히 사라져 바다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무엇을 믿느냐하는 선택은 본인의 자유이다. 의심을 할 수도 그 동화같은 스토리를 곧이 곧대로 믿을 수도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증명해낼 수 없는 지난 일이지만, 무엇을 믿고 싶어하는 지는 사람에 따라 판이하게 갈릴 것이다.
한 소년의 성장기, 한 사건을 통한 파이의 변화, 그리고 그 커다란 경험을 통해 파이가 신앙에 임하는 자세를
마지막 20분에 함축적이고 상징적으로 빗대어 보여준다.
아마도 이성주의자인 아버지 아래 자라온 파이가 나이가 들어서도 여러 종교를 간직한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가지 종교만을 갖는데 파이는 그렇지 않은 이유를 포함-
살아가는 것은 이 영화를 통해, 혹은 영화속에 등장하는 소설가에게 건내는 파이의 대사를 통해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엔 여러 곳에서 여러가지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 사실관계의 전부를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믿고싶은 것을 기호에 맞게 상징적으로 혹은 각색하여 믿기 마련이다.
나는 이 영화에서 파이의 스토리텔링하는 과정, 이성주의자인 아버지 아래에서 꿋꿋이 신앙을 하는 논리적인 이유를 위와 같은 맥락으로 생각한다.
오픈된 결말이다. 관객들은 각자 믿고싶어하는 진실을, 각자 원했던 결말을 정한 채 그 인과과정을 유추한다면 그거야 말로 진정한 기호에 맞는 해피엔딩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와 소설의 공통점이겠지만 이야기란 허구고, 허구는 거짓말이다.
우리는 모두 거짓을 '나쁨'으로 '악'으로 규정짓지만 그렇다한들 무슨 소용이랴.
거짓이라 한들 우리의 마음의 안정을 주고 믿음을 심어준다면 그 또한 쓴 약일 수 있음을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오랜만의 본 입이 벌어지는 아름다운 영상미 -혹은 상상- 의 분량에 대조적으로 매우 적은 현실일 수 도 있는 짧은 변명 -사실관계는 알 수 없다- 의 대비로
아름다운 거짓 -필자는 거짓이라 추측하고 있다.- 과 우리가 종교에 임하는 자세의 상관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의미깊은 영화라 생각하며 리뷰를 마감한다.
9.1
어쩜 평생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고
한참 나이가 먹어서야 깨달을 수도 있는 이런 좋은 생각들.
연륜이 있는 인생 선배님들께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이렇게 매체나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값지고 귀한 일이다.
물론 과정이 너무도 쉽고 편할때가 많아서 그 감사함을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쉽게 흘려 넘길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 새겨 항상 내 가치관과 소신에도 영양가있게 흡수할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답을 구하는시기가 아니라 질문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의미 자체가
그동안 내가 생각해오던, 혹은 주변에서 수없이 들어왔던 인생에 대한 정의와, 관점의 차원자체가 달라서 뒷통수맞은거 처럼 의아했지만서도
뼈저리게 공감하였다. 이런것을 거창하게 표현하면 깨우침이라고 표현해야 하던가.
사람이 무언가를 행할때의 인과는 분명히 있겠지만서도 그 원초적인 뿌리엔 가치관이라는 단단한 응어리가 자리잡고 있으니 말이다.